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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거는 하네스 — AI에게 경어 사용하기

AI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한 계기와, 그 변화가 AI의 성능보다 나 자신의 말투와 감정에 미친 영향을 정리했습니다. 경어를 '나에게 거는 하네스'로 보는 관점에 대한 글입니다.

2026년 6월 9일Published
AIHarnessThoughts
나에게 거는 하네스 — AI에게 경어 사용하기

얼마 전부터 저는 AI에게 경어를 사용합니다. 원래는 저도 반말이었습니다. "이거 해줘", "왜 안 돼", "그럼 뭐가 좋아져?". 코딩을 시키든 문서를 시키든, 반말로 시키고 답변은 꼬박꼬박 존댓말로 받았습니다.

그러던 저의 대화체가 바뀐 계기는 한 노정석님의 유튜브 영상이었습니다. 래블업 신정규 대표가 노정석 님의 채널(AI Frontier)에 나온 편에서, AI에게 꼬박꼬박 경어를 쓴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진행자가 "AI에 대한 존중이냐"고 묻자, 신 대표의 대답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대략 이런 취지였습니다.

AI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인데, AI를 많이 쓰다 보면 그 말투가 저도 모르게 사람과의 대화에도 번집니다. AI에게 함부로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에게도 함부로 말하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제 습관을 경계하려고, AI에게든 사람에게든 경어를 씁니다.

— 신정규 래블업 대표, AI Frontier EP86 인터뷰 중 'AI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 대목

EP 86. 진짜 내 일을 해결하는 Agentic Workflow (Lablup 신정규 대표) — AI Frontier

제게는 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어의 효용을 'AI의 답변 성능'으로만 따지던 제게, '나를 위한 의도적인 언어 습관'이라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흔히 경어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는 이런 질문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공손하게 부탁하면 AI가 더 잘해 줍니까?" 저도 궁금하여 관련 연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능 측면에서는 근거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연구(Yin 외, 2024)는 영어·중국어·일본어를 비교했는데, 무례한 프롬프트는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았지만 과하게 공손하다고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적당한 공손함'의 기준은 언어와 문화마다 달랐습니다. 2025년의 한 연구(GPT-4o 대상)에서는 오히려 무례한 말투의 정확도가 더 높게 나왔습니다(아주 공손 80.8%, 아주 무례 84.8%). 또 다른 2025년 연구는 여러 모델을 함께 놓고 보니 무례함이 거의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반대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정리하면, "공손하면 더 잘한다"는 통념은 모델 성능만 놓고 보면 근거가 엇갈립니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한 분은, 예전에는 학습 데이터의 전문적인 질의응답이 주로 경어로 쓰여 있어 경어가 더 전문적인 답을 끌어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 모델은 영어 데이터 위주여서 그 경향이 약해졌을 것이라고 짚어 주었습니다.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그러니 제가 경어로 바꾼 뒤 느낀 변화는, 실은 AI 쪽이 아니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습니다.

반말로 지시할 때 저는 이따금씩 감정적이 되곤 했습니다. "이게 왜 안 되지", "그게 아니라니까" 같은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런데 경어를 쓰면 그 감정이 한 단계 가라앉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이 부분이 의도와 다르게 동작합니다. 원인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처럼, 문제 해결을 중심에 둔 문장을 쓰게 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 몇몇 분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 분은 "반말을 하면 거친 말이 하고 싶어지고, 그러면 대화의 맥락이 오염되니, 스스로에게 경어 모드라는 장치를 걸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경어를 쓰니 하대하거나 감정이 섞이는 느낌이 줄고, 오히려 제 질문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신정규 대표가 말한 '말투의 전이', 그리고 그 습관을 경계한다는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낯선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방송에서 부부가 운전 연수를 할 때 서로 경어를 쓰라고 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운전 실력 향상 때문이 아니라,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어는 상대를 향한 격식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내 말투와 감정을 붙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물론 오해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공손하게'가 '모호하게'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가능하실 때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문장은 정중해 보여도 요청의 윤곽이 흐려져 결과가 더 나빠지기 쉽습니다. 말투는 공손하게 유지하더라도 AI에게 지시는 또렷하고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솔직한 단점도 있습니다. 타이핑이 길어지고, 토큰도 조금 더 듭니다.

다만 저는 그만한 값은 한다고 봅니다. 덧붙이자면, 경어를 꾸준히 쓴 덕인지 요즘 이슈가 되었던 'AI가 어느 순간 거친 반말이나 은어로 말투가 오염되는' 현상(관련 OpenAI 글)도 저는 거의 겪지 않았습니다. 제가 건네는 말이 결국 대화 전체의 톤을 결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하네스(Harness)'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AI가 일을 잘하도록 감싸 주는 작업 틀을 뜻합니다. 하네스를 잘 걸어주는 것이 최근 중요하게 대두되는 하네스 엔지니어링이죠.

AI를 대하는 태도와 분위기가 나 자신과 대화의 맥락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AI의 성능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사용자'에게 '경어 사용' 하네스를 걸면 체감 상 성능이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성능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솔직히 모델과 에이전틱 워크플로우의 설계 역량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덜 감정적으로, 더 분명하게 조리있게 말하는 효과는 비교적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AI에게 경어로 부탁을 드립니다. '해줘' 대신 '해주세요'로요. :)


이 글은 LinkedIn에 처음 공개한 글입니다.